윤리학이란 무엇인가? 윤리학의 필요성은? 토론이란 무엇인가?

조영규의 블로그

2014.03.03 22:28 from Culture


무엇이 진리인가? (What is truth?) VS 무엇이 옳은가? (Wha is good?) -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학은 어떤 명령 체계들도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학문이다. '해라, 하지마라' 같은 명령 체계들이 사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고 배워온 우리에게 익숙한 윤리학이다. 그것은 옳으니 해도 좋고, 이것은 옳지 않으니 하지말아라. 이때 우리는 옳고 그름이 상대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어왔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대로 판단해도 된다' 혹은 '철수는 철수대로, 영희는 영희대로 사는거고 각자의 기준이 있다'는 말로 언급되곤 하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개념이다.

과학이나 수학이 'What is truth?', 즉 무엇이 진리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면, 윤리학이란 'what is good?', 즉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왜 그것이 옳은지, 그것이 과연 우리 인간이 수용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학문인 것이다. 윤리학은 위에서 언급했듯, 어떤 명령 체계들이 분명히 그 속에서 한 축을 구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당화 작업에 대해 매우 중요시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것이 옳고, 왜 옳은지에 대한 정당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를 하기위해서는 기본적인 논리적 구조가 필요하며, 이를 우리는 윤리적 논증(추론) 이라고 한다.


학문과 자유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이없게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가지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떤 권위자가 있다고 치자. 이 권위자가 하는 이야기와 주장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고, 반론, 혹은 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면 이는 분명 자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선 옳바르게 학문이 발전 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해 정당화를 요구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면, 학문의 발전이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학문의 바탕은 정당화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중세때까지만해도 강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과학혁명, 시민혁명 이후 비약적인 발전과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정당화를 요구 할 수 있는 환경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정당화에 대한 요구는 토론으로 정착이 되었고, 어떤 주장이든 토론 안에서 강력한 정당화 Procedure를 거치게 된다. 매우 강한 정당화가 이루어진 것들은 체계적으로 정립이되며 발전한다. 수학을 예로 들면, 매우 엄격하지만 그 엄격함 덕분에 정당화 요구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며, 이로인해 수학을 자유 학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학문과 자유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토론이란 말로 하는 싸움이 아니다.

시중에 토론 모델은 매우 왜곡된 부분이 많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비교적 말 못하는 사람을 짓 누르는, 그리고 이기는 형태의 '게임'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토론이다.


철수가 "A산에는 나무가 5천그루가 있어" 라고 주장했다고 하자. 이 주장은 맞는 주장일까?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직접 산에 올라가 나무의 수를 재었더니 4952그루가 있었다 가정하자. 5천 그루에 근접하니 이 주장은 참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당연히 해당 주장이 사실과 일치하니 참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만약 이 주장이 매우 운이 좋게도 아무런 근거/이유 없이 발언된 것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이 주장은 괜찮은 것인가? 마치 동전 앞뒤 맞추기 게임 같은 것 아닌가? 앞이라고 찍었고, 우연히 손바닥을 펴보니 앞이 맞으니 참이되는 상황과 유사한 것 아닌가?


철수는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이 참이라고. 그리고 우린 질문해야한다. 정당화를 위해. "참인 근거와 이유는?" 철수는 근거와 이유를 든다. 철수의 근거와 이유가 충분한지, 정당한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질문한다. 만약 철수의 근거들이 모두 참이라고 해도, 그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건 옳지 않은 주장이야"라고 반론한다. 당연히 이 반론에도 정당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토론이다.


윤리적 주장은 정서적 문제다?

위의 철수의 주장은 그렇다쳐도, 윤리적 주장은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는 정서적 문제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다행히도, 철수는 아무런 근거/이유 없이, 즉 정당화 없이 주장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주장을 했다. 이는 일반적인 사실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주장은 그 차원이 조금 다르다. "A라는 행동은 나쁘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 이는 "A는 하지말아야 하는 행동이다."라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A를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 까지 연결된다. 이럴 때, "A라는 행동은 나쁘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A를 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패널티를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A라는 행동에 대한 정당화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5천 그루의 나무야 어떻게 되었든 관계가 없겠지만, 이 주장에 의해 'A라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패널티는 어떻게 보상이 될 것인가?


하고 하지말아야 할 것을 정의하는데 있어 정당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폭력과 같다. 윤리적인 주장을 할 때에는 사실 진리와 사실에 관련된 논의나 Reasoning보다 훨씬 정당화 Procedure에 엄격한, 심각한 면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리학 관련 문제가 가진 시급성.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금 더 천천히 지켜 봅시다."라고 이야기하고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볼 수도 있다. 그런데 윤리학 관련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관련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것을 천천히 지켜본다는 말은 "지금은 결혼하지마!"라고 명령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안락사 합볍화'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안락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내포한다.


불행하게도, 윤리학 관련 문제는 충분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제는 생겨있고 그것을 해결해야한다. 그것도 빠르게. 그렇지 않으면 큰 영향이 있다. 예를들어 '유전자 조작콩 수입 허용'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것이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는 50년쯤 지켜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배는 인천 앞바다에 와있고,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 배 안에 있는 콩은 폐기처분 되어야한다. 지금은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한 연구 결과도, 증거도 없다. 불행하게도 이미 콩은 와있고. 이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은 해야한다. 잠정적 결정이라도 당장 내려야 한다.


윤리학 문제 해결에 관련된 논리학은 기술적 측면에서 수적 논리학에 비해 낮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고적인 측면에선 더욱 복잡하며 훨씬 높은 능력을 요한다. 증거가 없는, 불충분한 상황에 논리적인 프로세스로 잘 정당화하여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 : 문제 - 찬/반 - 해결전략

토론이란 기본적으로 누가 더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주장1, 주장2, 주장3에 대해 이것이 맞는지, 정당한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은 정당화하는 프로세스다. 이 정당화에는 논리학이 필요하다. 정당화 Procedure를 깊이 다루며 연구한 학문이 논리학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우리는 첫 토론 문화가 생성되었다고 본다. 논쟁과 토론을 하게되면 토론을 하는 2명,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외에도 청중이 존재한다. 청중은 잘 정당화된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감정과 이익에 흔들린다. 그렇다보니 토론 문화는 2가지로 발전한다. 첫번째가 설득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쪽이다. 이것은 보는 이들에게 더 큰 재미와 흥미를 안겨줌으로 대외형 토론에서는 '설득'이 주가 된다.두번째는 정당화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논증이 주가되는 방식이다. 보통 대학등에서 시행되는 옥스포드형 토론 모델(아카데믹 모델)에서 사용된다.


어떤 모델이든 사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적으로 해결 전략 모색이다. 토론의 테이블에 앉는 순간 문제 해결을 위한 동료가 되어야한다. 말싸움이 아니며, 적이 아니다. "난 무조건 내 주장만 할 거고, 네 말은 안들어"라는 자세라면, 이것은 토론이 아니며, 함께 토론할 필요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토론의 목적인 해결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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